사람人30 [조선시대 미스터리]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고, 다섯 다리 송아지가 태어나다?! 역사 기록 속에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중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한 사건과 다섯 다리 송아지의 탄생은 지금 읽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야기죠. 과연 이 기묘한 사건은 단순한 전설일까요, 아니면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일까요? 선조실록166권, 선조 36년 9월 4일 정사 2번째기사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충청도 연기현(燕岐縣)의 백성 백춘희(白春希)의 집에서 기르는 암탉이 두 해 동안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깠는데, 올해에는 수탉으로 변하여 깃털의 모양과 빛이 바로 수탉과 같았다. 이산현(尼山縣)의 사노(私奴) 말질석(末叱石)의 집 암소가 숫송아지를 낳았는데, 네 다리 외에 또 다리 하나가 목과 등뼈 사이에 나서 등 뒤에 가로 걸쳤다. 관찰사 유근(柳根)이 .. 2025. 9. 30. 조선 시대에도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정조실록35권, 정조 16년 8월 24일 경인 2번째기사 1792년 청 건륭(乾隆) 57년 서울의 물가 안정에 힘쓰라 전교하다 전교하였다."도하(都下)의 천만 가구 중에 8가구나 10가구가 배불리 먹는 것은 두승(斗升)의 곡식 값이 비싼가 싼가에 달려 있는데, 그 구멍에 셋이 있으니 공(貢)·시(市)·상(商)이다. 근일에 대간의 말이 있어서 유사에게 신칙하여 곡식 값이 뛰어오르는 것을 금하게 하였으나 행해도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저 무천(貿遷)하는 방도는, 돈과 곡식이 다같이 돈이 되지만 그것이 풍부한가 부족한가에 따라 서로 보배가 되기도 하고 쓸모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조정에서 마땅히 평준(平準) 법칙에 힘써서 요컨대 백천(百川)이 도도하게 흐르듯이 해야 하는데, 그 방술은 그 근원이 .. 2025. 8. 25. 조선시대 ‘내금위 사건’에서 본 오늘날의 직장 괴롭힘과 제도 미비 중종실록62권, 중종 23년 8월 12일 신해 4번째기사 1528년 명 가정(嘉靖) 7년 내금위의 행수 등이 신래를 침학하는 것을 엄중히 추고하여 무겁게 다스리게 하다 "각 곳에 번서는 내금위(內禁衛)의 행수(行首)433) 등이 신래(新來)를 침학(侵虐)하는 사례를 병조가 아뢰었기 때문에 추고하도록 했거니와, 당초에 병조가 아뢴 무명 10여 동(同)이란 말은 외람되고 자질구레한 듯하기에 전지(傳旨)에 넣지 않고, 재물을 많이 허비한다는 것으로 전지를 만들어 추고하라는 것으로 분부했었다. 특히 내금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무릇 대소간에 사람들이 신래를 침학하는 짓을 법사(法司)가 추문하여 정죄(定罪)해야 하는데, 근래에는 그렇게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에 관한 율(律)을 율관(律官)에게 물어보니, 《대.. 2025. 8. 13. 일곱 살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 조선 시대 실록에 기록된 충격적 사건과 현대적 시선 영조실록109권, 영조 43년 윤7월 29일 경신 2번째기사 1767년 청 건륭(乾隆) 32년 산음 어사 구상에게 아이를 낳은 여자 아이의 일에 대해서 묻다 산음 어사(山陰御史) 구상(具庠)이 입시하여 서계(書啓)를 읽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떻게 탐문하였는가?" 하니, 구상이 말하기를, "여러 방법으로 캐물어 그 정상을 알아냈습니다. 본관(本官) 및 단성 현감(丹城縣監)과 같이 조사하였더니, 종단(終丹)의 오빠 이단(以丹)의 공초가 들은 바와 같았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소금 장사 송지명(宋之命)의 아들이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종단의 나이가 정말 일곱 살이었는가?" 하니, 구상이 말하기를, "그 이웃에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고 해서 데려다가 물어보았더니, 과연 일곱 살이었습.. 2025. 8. 3. 실록과 데이터의 운명: 조선왕조가 남긴 기록 보존의 교훈 선조실록40권, 선조 26년 7월 9일 신유 5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호남에 있는 태조 어진과 실록을 옮기기로 하다예조가 아뢰기를,"태조 대왕(太祖大王)의 수용(睟容)245) 과 선왕(先王)의 실록(實錄)을 당초 본도 감사가 도내(道內)의 험고(險固)한 곳을 찾아 그곳에 간직해 두었는데, 지금 왜적이 호남을 침범하려 하므로 전주 부윤(全州府尹) 이정암(李廷馣)이 불의의 변고가 있을까 염려하여 계청(啓請)하여 행재소(行在所) 근처로 옮기고자 한다 합니다. 그러니 급히 사관(史官) 한 사람을 보내어 감사와 상의하여 수용은 우선 관원을 차출하여 올려보내고 실록은 적세(賊勢)의 완급을 보아가면서 중도에 옮겨다 놓거나 실어오거나 하는 것을 임시(臨時)하여 처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2025. 7. 14. 조선시대에도 부정행위가? 과거시험 속 부정 사례와 오늘날의 교훈 영조실록115권, 영조 46년 7월 6일 경술 1번째기사 1770년 청 건륭(乾隆) 35년 잦은 과거에 관한 일로 하교하다주강을 행하고 하교하기를,"근자에 온갖 폐단은 과거(科擧)가 잦은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절제(節製)를 거친 다음에 회시(會試)를 보고, 그 뒤에 직부 전시(直赴殿試)하도록 하였으니, 아! 선비를 위하는 뜻이 참으로 거룩하였다. 옛법을 준수하여 문란한 일을 억제하는 것 역시 시의(時宜)에 맞추는 의리이니, 지금 이후로는 삼일제(三日製)·구일제(九日製)·황감제(黃柑製)는 일체 지난날의 준례에 따라 사제(賜第)하고, 인일제(人日製)·칠석제(七夕製)는 모두 회시에 응할 수 있는 자격을 주되, 증광시·별시에 함께 부치고, 강경생(講經生)의 봄·가을 도기(到記)는 친림(親臨)·명관(命官.. 2025. 7. 7.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