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천 권이면 천 개의 우주가 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에는, 천 권이 넘는 단 한 세트의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실록 인출청 낭청(實錄印出廳郞廳)이 영사(領事)·감사(監事)·제당상(諸堂上)의 뜻으로 아뢰기를,
"선왕조의 《실록》을 이제 이미 교정을 끝냈고 개보(改補)도 마무리지었습니다. 구건(舊件)은 모두 5백 76권인데, 이번 새로 인출한 것은 4∼5권을 합쳐 1책으로 하기도 하고 2∼3권을 1책으로 합치기도 했으므로 신건(新件)은 모두 2백 59권입니다. 따라서 신건과 구건을 통틀어 5건으로 계산하면 거의 1천 5백여 권이나 됩니다.
선왕의 비사(秘史)는 사체가 지엄한데, 허다한 권질(卷秩)을 한 곳에 합쳐 둔다는 것은 지극히 미안한 일이니, 외방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는 것이 하루가 시급합니다. 그런데 강화의 사각(史閣)은 작년에 이미 수축했고, 태백산(太白山)·오대산(五臺山)·묘향산(妙香山) 등처의 사각도 거의 공사가 끝나가고 있다고 들은 듯합니다. 관상감으로 하여금 봉안할 길일을 간택하여 계품하게 한 뒤에 외방의 경우는 실록청 당상 및 사관을 파견하여 배봉(陪奉)케 하되 장마가 지기 전에 급히 서둘러 봉안토록 하고, 서울의 경우는 춘추관을 수축할 때까지는 우선 병조에 봉안토록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또 서울과 외방에서 수직하는 절목에 대해서는 예조로 하여금 춘추관과 회동하여 상의해 처치토록 함으로써 허술하게 되는 폐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또한 온당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종조의 실록 도합 13책 가운데 첫 권과 9권은 두 권씩 있는 반면 제11권은 없습니다. 이는 필시 당초 나누어 보관할 때 살피지 못한 결과로서 지극히 온당치 못한 일이나, 지금 와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근래 국가에서 일으킨 공역(工役) 중에서도 이번의 역사(役事)가 가장 거창했으며, 공정(工程) 역시 착실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국(局)을 개설한 이래 4년이 다 되도록 각색(各色)의 장역(匠役) 및 해리(該吏) 등이 날마다 입역(立役)하면서 새벽에 나와 저녁에 돌아가는 등 한 시각도 쉴틈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대역사를 다행히도 아무 탈없이 완료하게 되었으니, 노고에 보답하는 상전(賞典)을 특별히 베푸는 것이 마땅할 듯싶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윤허한다. 당상과 낭청을 모두 서계(書啓)하여 논상하라."
하였다
목차
- 왕조의 거울, 실록이란
- 비밀 속에서 탄생한 실록
- 실록 보관의 철학 - '분산과 봉안'
- 하루도 쉬지 않고 쓴 사람들
- 기록이 만들어 내는 미래
- 마무리
왕조의 거울, 실록이란
조선시대의 실록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조선의 25대 왕, 472년의 역사를 한 치의 왜곡 없이 기록한 왕조의 거울이자, 지금 우리가 과거를 엿볼 수 있는 타임머신입니다. 실록에는 왕의 말 한마디, 신하들의 상소, 나라의 행정, 백성의 생활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기록을 남긴 사관들이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는 사실입니다. 왕 앞에서도 붓을 멈추지 않았다는 전설처럼 말이지요.
비밀 속에서 탄생한 실록
이번에 소개할 기록은 실록이 만들어지고 봉안(保安)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선왕의 비사(秘史)는 사체가 지엄한데... 사고(史庫)에 나누어 보관하는 것이 하루가 시급합니다.” 이 짧은 한마디에 담긴 의미는 큽니다. 실록은 그만큼 신성하고도 중대한 기록이었기에, 전국의 산간 깊은 곳 -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 강화도 등지의 사고(史庫)에 나누어 보관되었습니다. 불의의 화재, 전쟁에도 대비해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나눠 보관함으로써 후세에 온전히 전달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록 보관의 철학 - ‘분산과 봉안’
실록 보관의 핵심은 바로 분산과 봉안(封安)입니다. 당시 조정은 실록을 단 하나의 장소에 두는 것을 큰 위험으로 여겼습니다. 만에 하나 화재나 침입이 일어났을 경우를 대비해, 조선은 전국 주요 산악 지역에 '사고(史庫)'라는 전용 보관소를 마련했습니다.
- 사고의 위치 : 대표적으로 강화도,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 등 접근이 어려운 곳에 세워졌습니다. 모두 천연의 요새와도 같은 산중입니다.
- 보관 방식 : 실록은 목판으로 인쇄되어 책으로 엮은 뒤, 특정한 길일(吉日)에 선정된 의식을 거쳐 사고에 봉안되었습니다. 이는 단순 보관이 아닌 의례와 정신이 깃든 일이었으며, 철저한 절차와 보안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 서울 보관은 임시방편 : 춘추관이 수축 중일 경우엔 병조에 임시로 보관하되, 반드시 정식 보관처가 마련되기 전까지만 사용토록 했습니다.
이처럼 지리적·제도적·의례적 안전장치를 모두 갖춘 분산 보관 체계 덕분에, 실록은 전쟁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그 기록을 거의 완벽히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기록문화유산 보존 사례입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쓴 사람들
실록을 만드는 일은 한두 해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국을 개설한 이래 4년이 다 되도록... 한 시각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매일같이 붓을 들었던 장인들과 사관들. 이들의 묵묵한 노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도 조선이라는 시간을 생생히 마주할 수 있습니다.
기록이 만들어내는 미래
실록은 단지 과거를 적은 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참고서이자, 정의와 진실의 증거입니다. 한 치의 거짓도, 한 줄의 과장도 없이 쓰였기에 지금의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록을 지금 우리도 남기고 있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SNS에 남긴 하루의 감정, 블로그에 적은 단상들—그것이 먼 미래에 누군가에게는 이 시대의 ‘실록’이 될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조선왕조실록은 세계기록유산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의 보물입니다. 단순한 고문서가 아니라, 수백 년을 살아 숨 쉬는 '말 없는 증인'이죠.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있나요? 그 기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진실을 전하는 창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
'사람人'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하(立夏), 여름의 문턱에서 만나는 계절의 인사, 5월5일 (0) | 2025.04.28 |
---|---|
[반복되는 참사 앞에서]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를 생각하며 (0) | 2025.04.27 |
5월 1일 근로자의 날, 그 날의 역사와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 (0) | 2025.04.27 |
소현세자의 비극, 조선의 운명을 바꾼 죽음 (0) | 2025.04.25 |
역사 속 ‘병역 기피’ 이야기 - 조선시대에도 군대 가기 싫었다고? (0) | 2025.04.23 |
광해군의 외교 전략에서 오늘을 읽다 (0) | 2025.04.22 |
조선 시대, 비를 부르기 위해 호랑이 머리를 던졌다? (0) | 2025.04.21 |
24절기의 여섯 번째 절기, 곡우 (0) | 2025.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