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35권, 정조 16년 8월 24일 경인 2번째기사 1792년 청 건륭(乾隆) 57년
서울의 물가 안정에 힘쓰라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도하(都下)의 천만 가구 중에 8가구나 10가구가 배불리 먹는 것은 두승(斗升)의 곡식 값이 비싼가 싼가에 달려 있는데, 그 구멍에 셋이 있으니 공(貢)·시(市)·상(商)이다. 근일에 대간의 말이 있어서 유사에게 신칙하여 곡식 값이 뛰어오르는 것을 금하게 하였으나 행해도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저 무천(貿遷)하는 방도는, 돈과 곡식이 다같이 돈이 되지만 그것이 풍부한가 부족한가에 따라 서로 보배가 되기도 하고 쓸모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조정에서 마땅히 평준(平準) 법칙에 힘써서 요컨대 백천(百川)이 도도하게 흐르듯이 해야 하는데, 그 방술은 그 근원이 되는 물을 인도하는 데 불과할 뿐이다. 대저 공미(貢米)를 비록 억지로 시중(市中)에 들어가게 하려 하더라도 공납을 직업으로 하는 자는 바야흐로 자신도 먹고 살기에 겨를이 없는데, 시가(市價)를 비록 장사꾼이 정한 값보다 높지 않게 하더라도 앉아서 저자에서 장사하는 자들이 어디에서 쌀을 얻을 수 있겠는가. 상고(商賈)에 있어서는 먼 곳에서 배와 수레로 실어와 싼 값에 사들이고 귀할 때 팔아서 이익이 있은 연후에야 모여들고 이익이 쌓인 연후에야 흩어지게 된다. 이제 금법(禁法)을 설치하여 그 이익을 막는다면 이익이 막히게 되므로 배와 수레로 한강을 건너고 서울로 향하던 자들이 장차 허둥지둥 배와 수레를 돌려 돌아갈 것이니, 쌓아놓는다는 것은 틀린 계책이다. 그들이 폭주(輻輳)하도록 맡겨두고 그들이 서울에 이르도록 맡겨두면 비유하자면 마치 1만 곡(斛)의 곡식이 저자에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모든 저자의 곡식값이 이미 고르게 되면 나라 전체의 곡식이 자연 넉넉해질 것이니, 이런 정사가 옛사람이 방(榜)을 걸어 미가(米價)를 더하게 한 뜻이다. 듣건대 도성 백성들이 먹고 살기가 어려워 고통을 받고 있다 하므로 마음속에 잊지 못하고 염려되어 이처럼 곡식을 모을 요령을 묻는 것이다. 묘당에서는 이런 뜻을 알아서 말을 부연해서 거듭 알려 각처에서 풍문을 듣고서 다투어 모여들게 함으로써 도성 백성들에게 식량이 풍족하게 되는 효과가 있게 하라."
서울의 수많은 가구가 배불리 먹는 것은 곡식값에 달려 있다
조선 시대 전교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놀랍게도, 물가와 생활비 문제는 옛날에도 지금만큼 중요한 이슈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임금은 곡식 가격을 억지로 누르려 했지만, 단순히 “싸게 팔라” 명령한다고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조선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죠. 시장 원리와 물가 안정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요.
조선의 물가 조정법, 어떻게 했을까?
조선은 물가를 움직이는 핵심 요인으로 공(貢), 시(市), 상(商)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 공(貢) : 세금으로 걷은 곡식
- 시(市) : 시장 유통 구조
- 상(商) : 상인의 활동
그런데 단순히 가격을 법으로 누르면 어떻게 될까요?
상인들이 곡식을 들여오지 않고, 오히려 공급이 줄어들어 가격은 더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조선의 전교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 억지로 막는 게 아니라 곡식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 상인의 이익을 인정하고, 유통이 활발해지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 그렇게 해야 저자(시장)에 곡식이 쌓이고, 물가가 저절로 안정된다.
현대 경제와 닮은 점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 정부가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놓고,
- 한국은행이 금리를 조정하지만,
- 결국 중요한 건 공급망이 원활하게 돌아가느냐입니다.
예시로,
- 코로나19 초기에 마스크 대란이 있었죠. 단순히 “값을 올리지 말라” 명령한다고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스크 생산과 유통을 늘려야만 안정될 수 있습니다.
- 또 달걀 파동, 돼지고기 가격 폭등 같은 문제도 결국 수입 확대·물류 개선이 이뤄져야 풀렸습니다.
조선 시대의 상인 = 오늘날의 기업과 유통업체와 같습니다. 그들의 이익을 막으면 시장이 얼어붙고, 결국 소비자도 피해를 본다는 원리는 똑같습니다.
물가 이해를 위한 올바른 관점
조선 시대의 교훈을 현대에 적용해 본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물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서민의 생활비, 오늘날로 치면 가계 경제와 직결됩니다. - 억지 억제책은 부작용을 낳는다
가격만 누르면 공급이 줄고, 결국 더 큰 물가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 시장 참여자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조선의 상인이나 현대의 기업 모두 “이익”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 정책은 흐름을 터주는 방향이어야 한다
물줄기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더 잘 흐르도록 돕는 것이 핵심입니다.
교훈: 시장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 임금이 남긴 말은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억지로 막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읽고 길을 열어주라.” 오늘날 우리는 인플레이션, 환율, 금리 인상 같은 경제 뉴스를 매일 접합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시장 흐름을 이해하고 대비하는 지혜입니다.
마무리 – 역사 속 물가 이야기로 본 오늘
- 조선은 물가 안정을 위해 상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인정했습니다.
- 현대 정부도 마찬가지로 시장 원리와 공급망 안정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 결국 옛날이든 지금이든, 경제는 흐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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