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09권, 영조 43년 윤7월 29일 경신 2번째기사 1767년 청 건륭(乾隆) 32년
산음 어사 구상에게 아이를 낳은 여자 아이의 일에 대해서 묻다
산음 어사(山陰御史) 구상(具庠)이 입시하여 서계(書啓)를 읽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떻게 탐문하였는가?" 하니, 구상이 말하기를, "여러 방법으로 캐물어 그 정상을 알아냈습니다. 본관(本官) 및 단성 현감(丹城縣監)과 같이 조사하였더니, 종단(終丹)의 오빠 이단(以丹)의 공초가 들은 바와 같았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소금 장사 송지명(宋之命)의 아들이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종단의 나이가 정말 일곱 살이었는가?" 하니, 구상이 말하기를, "그 이웃에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고 해서 데려다가 물어보았더니, 과연 일곱 살이었습니다."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키는 얼마나 되던가?" 하니, 구상이 말하기를, "몸이 이미 다 자랐습니다. 송지명을 감영으로 잡아다 도신과 같이 엄히 문초해 보았더니, 한결같이 이단이 고한 말과 같았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사관(史官)은 마땅히 사책에 그대로 써야 할 것이다. 일곱 살 아이가 애를 낳았으니,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미 그 지아비를 알아냈으니, 현혹된 영남의 민심이 거의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니, 구상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어사의 보고에 간음한 사람이 곤장 한 대도 치지 않아 자백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내가 예상했던 바와 우연히 합치된다 하겠다. 그러나 지금 조사를 끝냈다고 나의 마음이 어찌 해이되겠는가? 괴물은 괴물이다. 내 비록 8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나의 덕이 요괴를 이길 것이다. 어찌 사서(史書)에 없는 일을 들을 수 있겠는가? 이 사람들을 처리하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 비록 은 고종(殷高宗)의 구치(雊雉)130) 와 상상(祥桑)131) 의 일은 없지만, 어찌 스스로를 수양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어사의 서계를 승정원에 두고 조용히 하교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번 연석(筵席)에서 몇 차례 하교했으나, 이목(耳目)의 역할을 하는 신하들이 마치 귀머거리나 장님처럼 한 사람도 논계(論啓)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록 하교하고 싶었으나 이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묵묵히 있었다. 세상에 어찌 아비없는 자식이 있겠는가? ‘날과 달로 무럭무럭 자란다.[日就月將]’는 말을 어찌 종단 같은 자에게 비유할 수 있겠는가? 무식한 면임(面任)132) 은 비록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독서한 사대부가 어찌 그 말을 베껴 쓸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백리를 다스리고 십 리를 다스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말 어렵다. 산음 현감에게 사적(仕籍)에서 삭제하는 법을 시행하고, 이 장계를 조보(朝報)에 내도록 하라." 하고, 그 여자·어미·간통한 남자·아이를 바다의 섬에다 나누어 귀양보내어 노비로 삼으라고 명하였다.
조선 시대 실록 속 한 장면이 현대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일곱 살 여자아이가 출산을 했다’는 이 놀라운 기록은 실제 역사 문헌에 실려 있으며, 단순한 전설이 아닌 국왕이 직접 어사에게 하교한 사안입니다. 오늘은 이 기이한 실록 기록의 신빙성과 현대적 의미, 그리고 오늘날에도 발생하는 유사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사료 속 사건 개요 – 조선 시대 실록의 기록
조선 후기 어사 구상이 산음(山陰) 지방에서 보고한 사건입니다.
- 주요 인물: 일곱 살 여자아이 ‘종단’, 그 어머니, 소금장수 ‘송지명’
- 사건 개요: 종단이 아이를 낳았고, 조사 결과 그 아버지는 송지명이라는 자로 밝혀졌습니다.
- 조사 방식: 같은 시기에 태어난 이웃 아이와 비교하여 나이 확인, 엄격한 문초
- 왕의 명령: 해당 인물들을 섬으로 귀양 보내고 노비로 삼을 것, 산음 현감은 관직에서 삭제 조치
실록에는 “사관은 이 사실을 사책에 남기라”는 명확한 명령이 적혀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 사건은 상식 밖의 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줍니다.
신빙성은 얼마나 될까? – 실록의 역사적 무게
조선왕조실록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사료로, 왕의 일기와 정무 보고가 거의 매일 기록된 문헌입니다. 이 기록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관이 왕의 지시 없이도 기록 (비교적 객관성 유지)
- 국왕의 직접 명령으로 사관 기록을 촉구한 것은 매우 드문 경우
- 당시 민심과 사건 처리 과정을 투명히 남기려는 의지
즉, 이 기록은 풍문이나 소설이 아닌 실질적 행정문서로서의 신빙성을 갖습니다.
현대적 시각에서 본 조선 시대의 ‘기이한 사건’
1. 생물학적 가능성은?
오늘날 생물학적으로 8세 미만의 임신·출산 사례는 매우 희귀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조기 사춘기’(Precocious Puberty)로 설명할 수 있으며,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의학 문헌에도 간간히 보고되고 있습니다.
2. 아동 성범죄의 그림자
이 사건은 단순히 ‘기이한 일’로 넘길 수 없습니다. 본질은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입니다. 당시에는 이 사건이 ‘요괴 같은 기이함’으로 다뤄졌지만, 오늘날이었다면 강력한 아동 보호법과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3. 민심 수습과 권력의 통치
왕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영남 민심을 안정시킬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통치 철학입니다. 사회적 충격이 큰 사건일수록 신속하고 투명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기이한 사건들
지금도 우리는 뉴스에서 믿기 어려운 사건들을 접합니다.
- 아동·청소년 임신 사건
- 부모가 자식을 방치하거나 학대한 뉴스
- 가짜 의사, 유령 학교, 신분 세탁 등 사회적 충격을 주는 사기 사건
이러한 사건들은 과거와 달리 다양한 미디어 채널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그만큼 정확한 사실 확인과 공정한 처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마무리 – 기이한 사건 너머의 진실을 보는 눈
‘일곱 살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는 조선 시대 기록은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사회 정의, 아동 인권, 행정 투명성, 역사적 기록의 역할 등 다양한 관점에서 되짚어봐야 할 주제입니다. 역사 속 사건 하나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사건을 보았고, 오늘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그것을 해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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