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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

오늘의 역사 - 18세기 제주에 표류한 류큐국 사람들

by bulddong 2025. 6. 7.

정조실록46권, 정조 21년 윤6월 7일 을사 2번째기사 1797년 청 가경(嘉慶) 2년

유구국 사람 7명이 표류하다가 제주에 도착하니, 이들을 돌려보내다

유구국(琉球國) 사람 7명이 표류하여 제주(濟州)의 대정현(大靜縣)에 도착하였으므로, 수로(水路)를 경유하여 되돌려보냈다. 그 배는 앞이 낮고 뒤가 높았으며 길이는 8파(把)이고 너비는 3파 남짓하였으며 높이는 1파 남짓하였는데, 전후와 좌우에 모두 달 모양[月形]을 그렸으며 위에 면포[木綿]로 점풍기(占風旗) 2면(面)을 세웠다. 《통속삼국지(通俗三國誌)》 1권(卷)과 역(曆) 1권을 휴대하였는데, 삼국지에는 가끔 한두 글자로 구두(句讀)를 방언(方言)으로 표시하였으나 문리(文理)가 끊겼다 이어졌다 하여 알아볼 수가 없었다. 역서(曆書)의 권면(卷面)에는 ‘보력 갑술 원력(寶曆甲戌元曆)’이라고 씌어 있었으며, 곁에는 ‘관정 7년 정사(寬政七年丁巳)’라고 씌어 있었는데 달을 세운 대소는 시헌서(時憲書)와 같았지만 오직 윤월(閏月)이 7월에 있었다. 그리고 거주지가 나패(那覇)에 있다고 스스로 말하였는데 나패는 그들의 국부(國府)의 이름이며 왕도(王都)와의 거리는 10리라고 하였다.

오늘의 역사 - 18세기 제주에 표류한 류큐국 사람들

 

 

 

 

제주에 닿은 낯선 배: 류큐국 7명의 표류 이야기

1797년, 지금으로부터 약 230여 년 전, 제주 대정현 해안에 낯선 이들이 표류했습니다. 그들은 바로 류큐국(지금의 일본 오키나와 지방) 사람들 7명. 예상치 못한 조난 끝에 제주에 도착한 이들은 당시 조선 관청에 인계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조치되었습니다. 그들의 배는 매우 독특했습니다.

  • 앞이 낮고 뒤가 높은 구조
  • 길이 약 12m, 너비 4.5m, 높이 1.5m
  • 배 전체에 달 모양 문양(月形)
  • 목화 천으로 된 점풍기(占風旗) 설치

특히, 달 모양 문양과 깃발은 지금 봐도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이 가져온 것: 삼국지와 달력

표류민들은 놀랍게도 《통속삼국지》 한 권과 역서(曆書) 한 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 《통속삼국지》: 대중을 위해 쉽게 풀어쓴 삼국지 이야기. 일부는 방언 표기가 되어 있어, 조선 관료들도 해독에 애를 먹었다고 전합니다.
  • 역서: ‘보력 갑술 원력(寶曆甲戌元曆)’과 ‘관정 7년 정사(寬政七年丁巳)’로 표기되어 있어, 조선력(時憲書)과는 달리 윤7월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류큐국이 중국과 일본 문화를 모두 받아들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거주지가 나패(那覇, 나하)라 소개했는데, 오늘날 오키나와현의 수도 나하의 옛 이름입니다.

 

 

 

현대적 해석: 표류를 통해 본 18세기 동아시아의 '글로벌 네트워크'

이 사건을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18세기 동아시아는 생각보다 더 긴밀히 연결된 세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문화 교류의 증거:
    • 삼국지와 달력은 류큐국이 중국 문화와 일본 문화 모두를 수용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류큐 선박의 구조와 문양은 당시 동남아시아 해상 문명과의 교류 흔적도 엿보입니다.
  2. 표류와 외교:
    • 조선은 낯선 나라의 표류민을 무조건 처벌하지 않고, 인도적으로 송환하는 전통을 유지했습니다.
    • 이는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와 외교 의식이 이미 일정 수준 성숙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바다 위 글로벌 네트워크:
    • 제주를 중심으로 조선-류큐-일본-중국을 연결하는 해상 루트가 작동하고 있었음을 상징합니다.
    • 작은 표류 사건 하나가 해상 네트워크와 문화 교류의 단면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 오늘날 글로벌 시대의 원형은, 어쩌면 이렇게 작은 조난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 조선과 류큐, 바다가 만든 인연

제주에 닿은 7명의 낯선 손님. 이들은 단순한 조난자가 아니라, 18세기 동아시아를 잇는 문화의 다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조선과 류큐국, 그리고 일본과 중국을 연결했던 바다 위의 인연 - 표류라는 우연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세계가 오늘날과 얼마나 닮아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